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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공연·답사·행사)

 

진정한 예술가의 예술혼과 예술세계를 담기 위하여 공연자를 직접 만나는 등 생생한 현장의 숨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해서 쓴 기사를 모은 방입니다. 기존의 6하 원칙에 의한 ‘공연사실’만을 알리는 취재와는 전연 다른 차별화된 취재를 위해 발로 뛰고 있습니다. 문의는 전화 : 02-733-5027, 누리편지(이메일) : pine9969@hanmail.net로 하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쓴 사람 김영조
쓴 날짜 2011-05-27 (금) 21:59
누리집 http://www.koya.kr
ㆍ추천: 0  ㆍ조회: 1824      
선소리 ‘산타령’을 들어보아라
[공연] 인간문화재 황용주 선생의 예악생활 55주년 기념공연
 
김영조
 
▲ 황용주 선생과 제자들이 “놀량”을 부르고 있다     © 김영조
 
사람이 태어나서 한 길을 걷는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 55년 동안 선소리 《산타령》을 부르며 외길을 살아온 이가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황용주 선생이 바로 그 사람으로 한국 산타령의 대명사로 불린다. 《산타령》은 예로부터 예인집단에 의해 전승된 것으로 불가(佛家)에서는 주로 사찰의 의식이 끝난 후, 산타령과 민요로 일반 대중을 위로하였고, 도시와 농촌에서는 넓은 마당에서 불을 밝히며 참가자들과 함께 즐겼던 노래가 바로 산타령이다.  

특히《산타령》은 답교(踏橋)놀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래였다. 1900년대까지도 서울의 왕십리와 뚝섬을 잇는 “살고지다리”에서는 정월 대보름 답교놀이가 행해졌는데 이날 밤, 서울의 산타령 패(牌)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목말을 타고 목청을 높여《산타령》을 부르며 밤을 새워 흥겹게 놀았다. 100년 전의 노래잔치를 연상해 보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타령》은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래 40여 년이 지난 현재, 당시의 보유자들은 모두 세상을 떴으며, 제2세대의 선두주자인 황용주ㆍ최창남 선생이 《산타령》음악을 재현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열악한 음악 환경 속에서 산타령의 전승을 위해 평생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한국 산타령의 대명사, 황용주 선생의 예악생활 55주년 기념공연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난 5월 24일 오후 3시 30분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 산타령보존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국립국악원, 국악신문사 등이 후원한 공연은 시작 30분 전부터 극장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로 초만원을 이뤘고 일부 관객들은 표가 모자라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이날 공연에 거는 관심도가 컸다. 
   
▲ 개성난봉가를 부르는 김양순외 5인     © 김영조
   
▲ 제자들과 함께 산타령을 부르는 황용주 선생     © 김영조

무대에 오른 공연자만도 무려 190여 명. 황용주 선생의 제자 키우기가 이루어낸 결실이다. 중간의 휴식시간을 빼고도 무려 5시간가량 청중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날 공연의 사회자는 황용주 선생이 아끼는 수제자 선소리 산타령 전수교육조교 방영기 씨의 맛깔스러운 사회가 빛을 내주었다.  

공연 시작 전 이 시대 국악이론의 권위자로 불리는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의 해설이 있었다. 서 교수는 “지금이야 산타령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만 예전에는 한양 백성이 참가하는 잔치마당에 춤과 함께 소리꾼들이 저마다 기량을 들어내고 여기에 참가한 백성이 하나가 되어 함께 즐기던 주요 곡목이 바로《산타령》이었다.”라고 선소리 산타령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서 “황용주 선생은 스승인 이창배 선생의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 전반을 배우면서 목청이 맑으면서도 고음을 무리 없이 질러내는 점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사설의 이해가 정확한 점 등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황용주의 모습은 평소에 말을 아끼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한 점과 스승은 물론 모든 이웃을 진정으로 섬기는 마음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라고 황용주 선생에 대한 예술가의 면모를 들려주었다.  

공연은 선소리 산타령으로 시작한다. 우선 황용주 선생과 전수교육조교 방영기 등 13명의 제자가 나와 놀량을 부른다. “산천초목이 다 무성한데” 황용주 선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한다. 이어서 공연자 모두가 “나 아하 에 에헤 에 엔 데에”라며 무대를 꽉 채운다. 계속해서 제자들의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산타령이 이어진다.       

▲ 황용주 선생과 함께 개구리타령을 부르는 29명의 어린이     © 김영조
     
▲ 개구리타령을 부르는 김태운(가운데)은 5살로 청중들의 손뼉을 한몸에 받았다.     © 김영조

어른들이 산타령을 부르고 난 뒤 앙증맞은 어린이들이 무대에 나왔다. 모두 29명의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개구지게 개구리타령을 부른다. 그 가운데 5살 김태운 군은 1년 반 배운 솜씨라는데 그 긴 노래를 어떻게 외워서 하는지 청중들로부터 큰 손뼉 세례를 받았다. 사람들은 산타령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며 감탄했다. 

이후 계속해서 경기좌창, 서도좌창은 물론 경기민요를 중심으로 한 각도 민요 그리고 회심곡까지 다양하게 이어졌으며 황용주 선생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빠른 선율의 휘몰이 “맹꽁이타령”을 맑은 고음으로 힘 있게 불러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이날 공연을 보러온 이멋진(51, 일산) 씨는 “산타령이란 장르를 처음 접했는데, 이런 소리가 우리나라에 있었음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다. 예전 우리 조상들이 잔치 때마다 즐겼던 산타령 이제 현대 한국인들도 모두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 55년 동안 외로운 우리 소리 길을 걸어온 훌륭한 산타령을 이어가고 계신 황용주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다.”라고 소감을 들려주었다.  

▲ 이건자 외 32명이 휘몰이 장기타령을 부르고 있다.     © 김영조

▲ 김옥련 외 35명이 경기좌창 금강산타령을 부른다.     © 김영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그야말로 큰 극장이어서 청중을 채울 능력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무대이다. 하지만, 이날 황용주 선생의 예악생활 5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은 빈 객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청중들의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선소리 산타령 공연을 본 적이 있는 사람도 드물고 더 나가 산타령이란 음악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청중으로 가득 메워졌다는 것은 선소리 산타령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라며 청중들은 입을 모았다. 

▲ 휘몰이 맹꽁이타령을 부르는 황용주 선생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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