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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사(공연·답사·행사)

 

진정한 예술가의 예술혼과 예술세계를 담기 위하여 공연자를 직접 만나는 등 생생한 현장의 숨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해서 쓴 기사를 모은 방입니다. 기존의 6하 원칙에 의한 ‘공연사실’만을 알리는 취재와는 전연 다른 차별화된 취재를 위해 발로 뛰고 있습니다. 문의는 전화 : 02-733-5027, 누리편지(이메일) : pine9969@hanmail.net로 하시면 친절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쓴 사람 관리자
쓴 날짜 2011-09-09 (금)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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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이만도 그리고 김락 지사를 위한 공연에 오열하다
향산 이만도 그리고 김락 지사를 위한 공연에 오열하다
[공연]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뮤지컬 국회에서 선보여

 

 

 

▲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단식하다 죽어가는 향산 이만도

 

애국지사 김락 여사와 스무나흘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 끝에 순국한 시아버지 향산 이만도 선생을 중심으로 한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뮤지컬이 국회의사당 의원동산 국회한옥 사랑재에서 지난 9월 7일 저녁 7시 30분부터 공연되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야외무대에 오른 이 공연은 매일신문, 안동국악단, 안동영상미디어센터가 주최하고 안동시청이 제작한 작품이다.

경술국치 101년, 향산 이만도 자정순국 101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이날 공연은 박희태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국회의원과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자리를 같이했고, 천여 명의 시민이 자리를 메워 그 열기를 더했다.

공연은 먼저 시아버지 향산 이만도(李晩燾, 1842.4.28~1910.10.24) 선생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선생은 “나는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을미(1895년)년 국모시해 사건에 한 차례가 죽지 못했고, 을사(1905년) 보호조약 때 두 번째로 죽지 못했다. 산으로 들어가 구차스럽게 목숨을 연장했던 것은 오히려 기다림이 있어서였다. 이제는 희망이 이미 끊어졌다. 죽지 않고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라며 단식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안동사람 향산 이만도와 김락 여사는 어떤 인물인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시로 들어 보자.

 

▲ 영상화면으로 보이는 김락 지사의 절규 모습

 

▲ 김락 지사는 만세운동을 했다고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고 두 눈을 잃는다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 무슨 그리 큰 죄런가 /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위는 이윤옥 시인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가운데 ‘김락 애국지사 시 전문’이다. 이처럼 이날 뮤지컬의 주인공인 김락 애국지사는 시댁과 친정이 모두 쟁쟁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김락(金洛, 1863. 1. 21~1929. 2. 12) 애국지사에 대해 이 시인의 말을 더 들어보자.

“3·1만세운동 당시 김락은 쉰여섯이었다. 우국지사 시아버지의 단식과 남편의 순국에 이은 두 아들의 독립운동을 몸소 겪은 김락은 친정 집안 역시 시댁 못지않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1911년 1월 가산을 처분하여 전 가족을 이끌고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으로 망명한 친정 오라버니 김대락은 이상룡·이동녕·이시영 등과 뜻을 같이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김대락 독립지사는 만삭의 손자며느리까지 모두 데리고 망명길에 올랐는데 손자며느리가 망명길에 산기를 느끼자 일제가 짓밟은 땅에서 출산할 수 없다 하여 압록강을 넘어 출산하도록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투철한 양가의 절절한 독립운동사를 몸소 겪으며 본인 스스로 일제의 고문으로 눈이 먼 채 한 많은 삶을 살다간 애국지사 김락은 안타깝게도 안동 밖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 무대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할 때 객석에도 준비된 태극기를 흔들었다.

 

▲ “소신은 큰 죄를 지었나이다.”라며 고종임금을 향해 절을 하며 울부짖는 향산 선생

 

향산 역을 맡은 황영호 씨는 걸쭉한 목소리로 순국지사다운 무거우면서도 처절한 노래를 토해냈다. “전하 소신이 큰 죄를 지었나이다”를 외치며 죽어가는 연기와 노래는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들을 수밖에 없게 했다. 결국, 집안 식구들의 비통한 울부짖음 속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 이르자 객석에서는 하나 둘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특히 이날은 여성 관객이 많았는데 향산의 죽음이 마치 내 시아버지, 내 친정아버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향산 선생만이 아니다. 향산 선생의 단식 순국 뒤 선생의 동생과 두 아들, 그리고 손자들까지 3대에 걸쳐 모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심에 선 김락 지사는 우선 시아버지의 순국을 지켜보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일본 순사의 혹독한 고문에 두 눈을 잃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또 한 번 오열을 터뜨렸다. 김락 역의 지정희 씨 역시 김락 지사의 단정 하면서도 분명한 결의를 잘 표현해냈다.

또 해설을 맡은 김성규는 향산 이만도를 비롯한 안동 독립운동의 역사를 거침없이 눈에 보이듯 소개하는 것은 물론 노래도 맛깔스럽게 불러 뮤지컬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감초인 팔근이 역의 권영구, 각설이 역의 김보화, 주재소장 역의 황영준, 이노우케 역의 임종군 등 등장인물 모두 아낌없이 찬사를 보낼 만큼 훌륭한 연기와 노래 솜씨를 보여줬다.

 

▲ 맛깔스러운 몸짓과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은 해설자와 팔근이 각설이 역

 

▲ 독립군들이 힘차게 독립군가를 부를 때 관객도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같이 불렀다.

 

이날 공연은 순전히 안동 사람들만으로 서울 초연을 준비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는 후문이다. 지방도시 안동의 국악단이 중심이 되어 예산도 넉넉하지 않았을 터인데 여러 악조건 속에서 훌륭한 공연을 한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뮤지컬은 관객들로 하여금 아낌없는 손뼉세례를 받았다. 본 공연 시작 전에 내빈들의 인사말과 공연 중간마다 노래가 아닌 설명 시간이 좀 길어 지루하게 느껴진 것 말고는 완벽한 공연이었다.

좀 더 넉넉한 예산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이야기 전개를 위한 본격적인 각본작업이 따라주고 야외가 아닌 실내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면 더욱 집중된 극적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공연이 주는 좋은 점 대신 산만함에 대한 부분은 야외 뮤지컬의 한계이며 숙제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이번 뮤지컬은 관객의 눈과 귀를 시종일관 사로잡았다.

이날 멀리 경기도 마석에서 달려와 공연을 본 마완근 마석고등학교 교사는 “오늘 뜻밖에 귀한 공연을 보았다. 향산 이만도 선생의 단식과 순국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일제강점기 여인들이 이렇게 김락 지사처럼 강인하게 항일투쟁을 했던 사실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교사로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향산 이만도 선생과 김락 지사의 숭고한 정신을 새겨 넣는 일에 온 정성을 쏟겠다.”라고 다짐했다.

 

▲ 출연진과 제작진 / 이만도 역 황영호, 김락 역 지정희, 해설자 역 김성규(윗줄) 총감독 김준한, 원작 이준방, 예술감독 곽태천(아랫줄)

 

또 이날 공연을 지켜본 일본인 스즈키 에리 씨(22살, 유학생)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들에게 이런 슬픈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 주재소의 일본 형사들이 한없이 미웠다. 한국의 쓰라린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입추의 여지없이 천여 석의 자리가 차고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관객들이 객석을 에둘러 서서 관람한 이날 뮤지컬 공연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는 공연이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열렬한 환영과 손뼉을 치는 관객들의 함성이 국회의사당 안은 물론이고 여의도를 넘어 서울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대성공이었다.

이 여세를 몰아 독립운동가의 뮤지컬을 만든 대한민국 최고의 국악단 안동뮤지컬 팀을 그대로 내려보내지 말고 서울의 뮤지컬 전용극장에서 다시 한 번 그 감동을 전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또한, 안동인이 보여 준 불굴의 나라사랑 정신과 항일독립정신이 온 나라에 울려 퍼지도록 전국 순회공연은 물론이고 일본 땅에서도 성대하게 공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 김락 애국지사를 다룬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펴낸 이윤옥 시인과 시집에 삽화를 그려준 이무성 화백도 “락,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 뮤지컬 공연에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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